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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르완다 해외봉사

코이카 해외봉사/시간의 무서움, 코이카 훈련소 입소한지 언 8년 -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나게 된 이유

202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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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가게되는 엄청난 운명이 정해졌을 때
나의 빼빼마른 어깨와 아담한 코는 푸른하늘 끝에 높은 줄도 모르고 닿아있었다.

어렸던 22살 훈련소에서 만났던 25살의 형은 왠지 모르게 듬직하고 이 세상 모든걸 알고 있는 인생 선배였다.
그리고 서른살이 되어 만난 그 형은
여전히 듬직하다.

하지만 훈련소 당시의 형을 생각해보니...
너무 어린 소년이었다.

 

 

때는 2011년이 거의 마무리 지어지던 겨울
김정일 동지님의 서거 소식으로,,,
군대를 가야할 나이를 앞둔 나에게는
너무나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먼저 군대에 간 친구들
이제 막 들어가는 친구들 모두
우리나라 군인 모두가 비상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은 고민에 빠진 나.
'과연 이렇게 다른 친구들처럼
일반 육군으로 입대하는게 맞는걸까?'
'코이카에 태권도 단원으로 지원해서
이번에 떨어지긴 했지만...
혹시 내 전공 기계 분야로
지원하면 붙을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해외봉사 한번 안 나간 내가
과연 해외에서 생활은 가능할까?'
참 고민이 많았던 나날들이었다.

 

설거지 같은 재미없는 것에 날 묶어둘 수 없다구!!!!

 

그리고 결국 결심했다.
1년을 더 준비해보기로.
이미 대학교 2학년을 마친 상태라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입대한지 벌써 1년
혹은 이제 무조건 입대를 하는 시즌이었다.

그러나 나홀로 학교에 남아 3학년 1학기를
정신바짝차린 채로 맞이하게 된다.
사실 쫌 두려웠다.
친한 남자애들이 다들 떠났는데
나만 너무 다른 경로로 이탈해버린건 아닌지
또 몇몇 친한? 친구들은 될지 안될지도
모를 코이카 때문에 군대를 미룬다?
그렇게 나를 과소평가한 친구도 있었다.

사실 나는 쫌 악바리 고집이 있다.
내가 정한 길은 누가 무시하더라도
더 철저히 준비해서 해내고야 말겠다는
그런 고집 말이다.

 

 

그래도 그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기계 분야로 TO가 날지 안날지도 모르고
확실하게 붙을 수 있는 조건이 뭔지도 불명확
어느 하나 확실한 건 없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확실한 건만
좇는다면 인생의 진짜 즐거움을 모르게 된다.
불확실함 속에서 이를 즐기면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더 발전하고
그렇게 나은 사람이 되는 즐거움.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들과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가속되면서
더 더욱 우리 인간 따위가 미래를 제대로
예측한다는 건 더욱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어찌됐건 나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6개월만에 성공시켰다.
물론 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운이 좋게 기계분야 TO가 4명이나 나왔고,
관련 분야 3학년부터 합격이 가능해보였고,
대부분의 기계공학과 학생들은 모른다 이 제도를.

하지만 난 코이카를 지원하기 위해
TO가 나오기 2-3개월 전부터
오로지 코이카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기계제도 2D CAD, 3D CAD 인벤터, 3D MAX
등 온갖 프로그램 툴을 다루고 공부하고
시험보고 자격증을 따고 있었다.
코이카에 대한 에쎄이, 정보서적, 인터넷자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읽어댔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봤다.
이번 상반기는 TO가 없을 수도 있다.
하반기까지 생각하자.
그리고 정말 운이 없어서 계속 TO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대학원까지 쭉 달려보자.

 

제출 서류 목록에서 보이는 노력의 흔적들

 

나는 이미 방향을 정했었고
되든 안 되든 그 진로를 묵묵히 걸었다.
3학년 1학기는 노는 시간도 거의 없었고
학교 수업도 예습 복습 철저히 하며
대부분 A+
중간중간 자격증 시험도 치루며
모두 합격하여 스펙을 쌓았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사회생활까지 망치면서 그러진 않았다.
남자 동갑애들은 없었지만
군제대한 선배들, 신입 후배들,
그리고 새로 알게된 여자 동기 친구들.
여러모로 오히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지겹고 기나긴 대기업 채용보다 피말리던
해외봉사단 채용에 합격하고
이제 진짜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날 운명이
꿈만 같던 현실로 다가왔다.
8년이 지난 아직까지 가슴이 떨리는 걸 보면
많이 걱정했고 설레했으며 진심으로 기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믿었고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을
더 많이 둘 수 있었던 행운이 있었고
부모님조차도 묵묵히 내 길을 응원해주었기에
큰 흔들림 없이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엄청난 사람들을 군대 동기로
두게 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시선의 범위를
더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어캠프 교사로서도 사랑받았던 나, 이 이야기는 다음에!

 

사람은 누구나 실패라 생각되는 순간을 겪는다.
실패라는 단어는 꽤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에 매몰되지 않고
그를 이용하여 새로운 시도,
혹은 재시도를 하게 된다면
분명 그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해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렇게 긍정적 사고를 내면에
가득 담아서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몸 밖으로 꺼내어버린다면
당신의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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